간판이 바꾼 부산의 표정

Last Updated :
간판이 바꾼 부산의 표정

매일 스쳐 지나가는 간판은 가게의 이름을 알리는 표시인 동시에 거리의 분위기와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이다. 눈길을 끄는 간판 앞에서는 걸음이 잠시 느려지고, 그 안에 어떤 공간이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시민의 일상과 맞닿은 간판이 도시경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처럼 간판에 담긴 기능과 이야기를 살펴보는 2026 부산 사인엑스포가 2026년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시민공원 다솜관에서 열렸다. 올해로 24회를 맞은 전시는 부산의 아름다운 사인문화 발전을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 간판의 변천사와 창의적인 옥외광고 디자인,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동네 간판 등 여러 작품이 한자리에 소개됐다.

간판의 가능성을 펼친 전시

행사장이 마련된 부산시민공원에는 파란 하늘 아래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 다솜관이 자리한다. 다솜관은 1980년대 후반 미군 고등학교로 사용되던 건물 일부를 철거한 뒤 장교 숙소와 부대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다. 현재는 전시와 세미나 등을 진행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부산 사인엑스포에서는 부산옥외광고대상전을 중심으로 창작모형광고물 부문, 창작디자인광고물 부문, 우리동네 예쁜간판 그리기, 아름다운 간판, 공감 사인 프로젝트 등의 전시가 함께 진행됐다. 완성된 간판부터 모형과 그림, 시대별 기록까지 서로 다른 형식의 작품이 이어지면서 간판이 지닌 여러 역할을 보여줬다.

올해 옥외광고대상전에는 모두 4,196점이 출품됐다. 많은 작품이 모인 전시장에서는 간판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과 다채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간판을 단순한 광고 시설물이 아니라 도시와 공간을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전시의 중심을 이뤘다.

아이디어를 구현한 창작모형광고물

전시장에 들어서면 창작모형광고물 작품들이 먼저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사전에 출품된 32점 가운데 엄선된 24점이 실제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됐다. 평면적인 글자 배치에 머물지 않고 조명과 입체 구조를 활용한 작품들이 이어졌으며, 전통문화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디자인도 선보였다.

국립국악원을 주제로 제작한 얼쑤는 전통 사물놀이가 지닌 흥겨운 분위기를 현대적인 디자인과 조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익숙한 전통 소재를 사인 디자인의 언어로 옮겨 공간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한국 전통의 미를 담아낸 수목원 간판 황혼과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형상화한 온길돌봄센터도 전시장에 소개됐다. 작품마다 이름과 형태, 빛의 사용 방식은 달랐지만 공간의 정체성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간판으로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창작모형광고물 전시는 아이디어가 실제 간판의 형태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관람객들은 상호를 표시하는 기능을 넘어 공간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표현하는 간판의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간판과 조형물, 디자인 작품의 경계가 맞닿는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와 조화를 이루는 간판

전시장에서는 아름다운 간판 부문 7점과 공감 사인 프로젝트 6점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작품은 좋은 디자인이 실제 거리와 상업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가게의 특성을 살리면서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간판은 한 점의 시설물에 그치지 않는다. 건물의 외관과 거리의 인상을 함께 구성하며, 사람들이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규모가 작은 가게라도 고유한 개성이 담긴 간판을 갖추면 거리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작품을 통해 나타났다.

아름다운 간판과 공감 사인 프로젝트가 나란히 전시된 공간에서는 개별 업소의 개성과 전체 도시경관의 조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강한 색이나 큰 글자만으로 시선을 끄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이 지닌 성격과 주변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의 중요성이 작품마다 드러났다.

어린이가 그린 동네의 풍경

제15회 우리동네 예쁜간판 그리기 전시장에는 부산 어린이들이 바라본 동네의 모습이 펼쳐졌다. 이번 행사에는 약 3,900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알록달록한 그림들은 어린이마다 서로 다른 색과 형태로 동네의 간판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꽃집과 문구점, 영화관, 축구장, 빵집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친숙하게 여기는 장소들이 등장했다. 같은 종류의 공간이라도 간판의 글자와 색, 주변 풍경을 표현하는 방식은 작품마다 달랐다. 전시장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거리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간판이 어린이의 그림에서는 동네의 추억과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풍경으로 표현됐다. 간판을 그리는 과정은 어린이들이 생활하는 거리와 주변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녔다.

어린이들의 작품은 간판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가장 가까운 디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상점의 이름뿐 아니라 좋아하는 장소와 동네에 대한 기억까지 그림에 함께 담기면서 창작모형광고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간판의 가치를 전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간판

야외에는 우리나라 간판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옛 거리 사진과 시대별 자료를 통해 간판의 소재와 디자인, 광고문화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886년부터 1910년대에는 얇은 함석이나 널판 등에 흰색 바탕을 칠하고 검은 글씨를 적은 간판이 등장했다. 제한된 소재와 제작 방식 안에서 글자를 중심으로 상점과 업종을 알리는 형태였다. 1910년 이후에는 페인트가 전해지면서 간판 제작에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는 네온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했다. 1910년 조르주 클로드가 발명한 네온은 홍콩의 밤거리를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로 퍼졌고, 도시의 밤을 밝히는 새로운 광고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빛을 활용한 광고 방식의 등장은 거리의 모습과 간판의 표현 범위를 함께 바꿨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는 네온이 도심 곳곳에 보급됐다. 점멸기 등을 조합한 네온사인과 대형 옥상 간판이 등장하면서 도시 풍경도 한층 화려해졌다. 특히 1950년대까지는 간판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많지 않아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부업으로 간판을 제작하는 일도 흔했던 것으로 전시를 통해 소개됐다.

전시 사진에 담긴 부산 동래시장과 부산진시장, 남대문시장 거리에는 당시의 상점과 간판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상점마다 내건 글자와 광고물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상업 공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제시됐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는 목재 스카시를 대신해 알루미늄과 아크릴 간판이 등장했다. 이후 함석 채널은 갈바스틸과 스테인리스 소재로 대체됐고, 조명기구를 내부에 넣은 입체적인 간판도 발전했다. 재료와 제작 기술이 달라지면서 간판의 형태와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대형 네온 광고판도 등장했다. 번화가에는 여러 형태의 광고물이 설치됐고, 밤거리에서 빛을 활용한 간판의 존재감도 커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LED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간판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글씨를 고정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에서 범위가 넓어지며 영상과 빛, 움직임을 활용하는 디지털 옥외광고로 이어졌다.

시대별 간판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한 재료와 기술뿐 아니라 생활상과 도시문화까지 함께 보여주는 기록이다. 옛 거리 사진과 간판 자료를 따라가면 광고 방식이 변한 과정과 함께 도시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도시의 표정을 만드는 사인 디자인

부산은 산과 바다, 오래된 원도심의 골목과 새로운 상업 공간이 함께 자리한 도시다. 지역마다 거리의 모습과 공간의 이야기가 다른 만큼, 각 지역의 개성을 살리면서 전체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사인 디자인의 중요성도 크다.

사람들은 길과 약속 장소를 찾을 때 자연스럽게 간판을 바라본다. 잘 만들어진 간판은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거리의 분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반대로 여러 간판이 한데 모인 거리에서는 개별 디자인뿐 아니라 주변 건축물과의 조화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2026 부산 사인엑스포는 창작모형과 실제 간판 사례, 어린이 그림, 시대별 기록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며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간판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게 했다. 전시장에서는 간판이 상호를 알리는 수단에서 출발해 공간의 성격과 지역의 이야기, 도시의 역사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구체적인 작품으로 제시됐다.

전시장 입구에는 간판이 아름다우면 우리 부산이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번 전시는 그 문구처럼 간판 한 점의 디자인이 가게와 건물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와 도시의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 자리였다.

간판이 바꾼 부산의 표정
간판이 바꾼 부산의 표정
간판이 바꾼 부산의 표정 | 부산진 : https://busanzine.com/8245
서울진 부산진 경기진 인천진 대구진 제주진 울산진 강원진 세종진 대전진 전북진 경남진 광주진 충남진 전남진 충북진 경북진 찐잡 모두진
부산진 © busanzine.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