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낙동강 시화길, 역사와 문학의 물길

부산 낙동강 시화길, 역사와 문학의 물길

부산의 낙동강을 따라 펼쳐진 대저둑방 시화길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부산의 역사와 문학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산책 코스다. 이곳은 낙동강의 물길을 따라 흩어져 있는 역사 문화유산과 문학 작품들을 통해 지역의 깊은 내력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강서구 강서낙동강변 30리 벚꽃길로도 알려진 대저둑방 시화길은 도시철도 3호선 강서구청역에서 구포대교 방향으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펼쳐져 부산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다. 1992년부터 조성된 이곳에는 금수현의 노래비와 이은상, 배재황, 조지훈, 박목월, 이주홍 등 지역 출신 문인들의 시비가 설치되어 있어 문학과 역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금수현의 「그네」 노래비

시화길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금수현의 「그네」 노래비는 한국 음악계의 거장 금수현(1919~1992)을 기리는 작품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면 사덕리 출신인 그는 음악 교육과 창작에 헌신하며 「그네」를 비롯한 다수의 가곡을 남겼다. 「그네」는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이은상의 「낙동강」 시비

금수현 노래비에서 15분가량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이은상(1903~1982)의 「낙동강」 시비는 낙동강이 품은 유구한 역사와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다. 경남 마산 출신인 이은상은 민족주의 문학을 이끌며 시조 부흥 운동을 주도했다. 다만, 친일 논란이 있어 역사적 평가에 복합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배재황의 「오막살이」 시비

이어지는 배재황(1895~1966)의 「오막살이」 시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과 시를 통해 나라와 지역을 위해 헌신한 그의 꿈과 좌절을 담고 있다. 경남 진해 출신인 그는 3·1운동과 웅동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이은상의 「故鄕길」 시비와 독립지사 기념비

시화길의 마지막 구간에는 이은상의 「故鄕길」 시비와 함께 조정환, 이수강 두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비가 자리한다. 「故鄕길」 시비는 일본에 거주하는 경남 출향민들이 세운 것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정환 선생은 만주에서 독립운동 중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생가터는 부산 강서구 미음동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조지훈과 박목월의 시비

오후 산책에 어울리는 조지훈(1920~1968)의 「완화삼」과 박목월(1915~1978)의 「나그네」 시비도 시화길에서 만날 수 있다. 두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주홍의 「엄마의 품」 시비

이주홍(1906~)의 「엄마의 품」 시비는 대저생태공원 입구 근처에 자리해 있으며,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동시로 표현한 작품이다. 아동문학가로서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활약한 그의 작품은 지역 문학의 빛나는 자산이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표지석

시화길의 마지막은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세워진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 표지석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정한은 낙동강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과 민초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모래톱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으로, 을숙도에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부산 낙동강 시화길은 강의 품 안에서 흐르는 물길처럼, 문학과 역사가 어우러져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부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물길의 이야기를 만나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