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원도심 건축투어, 도시의 시간 속으로

부산 원도심 건축투어, 도시의 시간 속으로

부산의 도시건축문화자산을 직접 걸으며 배우는 ‘뚜벅뚜벅 부산건축 투어’는 매년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건축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건물의 형태와 구조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사회적 맥락까지 세밀하게 설명해 주어, 같은 거리를 걸어도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깊어집니다.

뚜벅뚜벅 부산건축 투어는 총 5개 코스로 운영되며, 그중 원도심 건축 투어는 백산기념관에서 시작해 한성 1918, 부산 중구 문화원, 대한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 부산 근현대 역사관까지 이어지는 약 2시간 도보 코스입니다.

백산기념관에서 시작된 역사 여행

11월 15일 오후 2시, 원도심 건축 투어는 백산기념관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백산기념관은 안희제 선생이 운영했던 ‘백산상회’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건축 구조를 살피며, 도시의 기억이 작은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성 1918, 금융문화의 상징

1918년에 지어진 한성 1918은 대한제국 국책은행인 한성은행 부산지점으로 사용되며 부산 금융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건축물입니다. 신고전주의와 빅토리아 시대 은행 건축 양식이 반영된 외관은 서구식 건축 문법이 근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 차례 보수와 보강을 거쳐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근대 건축이 단순한 보존을 넘어 도시 재생의 실사용 자산으로 기능하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산 중구 문화원과 골목길의 매력

다음 방문지는 부산 중구 문화원으로, 근대기 유력 기업인이 건립한 왜양절충식 주택입니다. 이곳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신덕균 선생이 약 40년간 거주한 공간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원형을 최대한 보존해 지역 역사와 문화자원과 연계 가능한 거점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이 구간의 골목길은 다양한 오래된 건물이 어우러져 원도심의 시간감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합니다.

대한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 근대 성당 건축의 명작

1925년에 건립된 대한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은 영국 성공회 선교사와 기술자들이 설계·시공에 참여한 근대 성당 건축물입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적용한 초기 사례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며, 로마네스크 양식을 바탕으로 한 돔형 천장과 곡선미가 돋보입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란민 보호와 종교적 위로의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근대건축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부산 근현대 역사관 별관, 시대의 흔적을 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신축된 부산 근현대 역사관 별관은 일제강점기 경제 지배 구조를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 숙소와 미국문화원으로 활용되었으며, 1999년 반환 후에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운영되어 원도심에서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초기 모더니즘 경향을 보여주는 외관과 섬세한 장식 요소들이 건축적 관찰 포인트입니다.

도시의 시간을 걷다

이번 원도심 건축 투어는 건물 한 채 한 채를 보는 것뿐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경험이었습니다. 근대 부산의 건축문화가 품고 있는 역사성과 가치를 가까이에서 확인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코스를 통해 부산 도시의 결을 더욱 세밀하게 기록해 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