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길 5코스, 근현대사와 만나는 여정

부산 산길 5코스, 근현대사와 만나는 여정
부산의 대표적인 산인 구봉산과 엄광산을 잇는 5코스는 부산의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산들은 부산항을 감싸는 등줄기 역할을 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과 한국전쟁 시기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1987년 6월항쟁과 민주화 열사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부산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가톨릭센터와 민주화운동의 발상지
부산가톨릭센터는 1982년 4월에 설립되어 부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에는 단순한 문화 공간을 넘어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2017년 6월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센터 입구에 설치된 ‘6월항쟁의 중심지 표석’은 당시의 뜨거운 저항과 민주헌법 쟁취의 구호를 새긴 화강암 조형물로,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전한다.
1987년 6월 8일부터 13일까지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열린 ‘5·18 광주의거 사진전’은 전두환 정권의 감시 속에서도 6만 명이 넘는 시민이 관람하며 부산 시민들에게 5·18의 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부산에서 6월항쟁이 폭발하는 데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다.
산리마을과 금수현 음악살롱
대청스카이전망대 맞은편 산리마을에는 한국 음악계의 거장 금수현이 한때 거주했던 ‘금수현 음악살롱’이 있다. 금수현은 1947년 부산극장 지배인으로 발탁된 후 부산사범학교 교감과 경남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음악 대중화와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 1992년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산리마을은 벽화와 화분, 민들레 홀씨가 어우러진 ‘행복마을 산리’라는 작품으로 꾸며져 있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박기종 기념관과 근대 부산의 선각자
박기종은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경제인이자 철도와 교육 분야에서 근대화를 이끈 선각자다. 그는 부산지역 치안과 무역 업무를 담당하며 자수성가한 인물로, 동래 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박기종기념관에는 그의 업적과 부산 근대화에 기여한 내용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민주공원과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
민주공원 내 넋기림마당은 1987년 6월항쟁 과정에서 희생된 박종철, 황보영국, 이태춘 세 열사를 기리는 추모 공간이다. 이들은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2022년 6월항쟁 35주년을 맞아 ‘늘빛드레’ 추모의 벽이 조성되어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박종철 열사는 고문으로 사망하며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황보영국 열사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헌신하다 병상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다 세상을 떠났다. 이태춘 열사는 1987년 최루탄 추방의 날 시위 중 최루가스에 노출되어 추락사했다.
또한 민주공원에는 4·19혁명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자리해 부산 시민들의 민주화 정신을 상징한다.
중앙공원과 구봉산·엄광산의 역사
중앙공원은 항일과 호국, 민주화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한국전쟁 시기 피난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1970년 대청공원으로 조성되었고, 1986년 중앙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부산광복기념관과 충혼탑이 있어 역사적 의미가 깊다.
구봉산 등산로 입구에는 ‘숲또랑길’ 아치가 서 있고, 봉수대 모형과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국가 위급 상황을 알리던 통신 수단으로, 구봉산 봉수대는 낙동강 하구와 몰운대 앞바다를 감시하며 황령산 봉수대로 신호를 전달했다.
엄광산 정상에서는 부산항과 영도, 광안대교, 진구, 사상구, 북구, 강서구, 김해평야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엄광산은 금정산맥 말단에 위치하며, 1995년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옛 지명으로 복원되었다.
내원정사는 1973년 창건된 조계종 사찰로, 현대적 운영과 불교유치원, 사회복지법인 내원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와 부마민주항쟁
동아대학교는 1960년대부터 학생운동의 중심지였으며, 1987년 6월항쟁에도 적극 참여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동아대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시의 건물과 교문은 일부 사라졌지만 도서관 앞 ‘석당정재환 동상’과 잔디밭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코스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길로, 부산 근현대사의 격동과 시민들의 저항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