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하루를 그리다

부산의 평범한 순간을 화폭에 담다
일러스트레이터 노콩은 따뜻한 색과 부드러운 선으로 부산의 풍경과 시민들의 일상을 그린다.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 가족과 추억을 쌓는 모습, 익숙한 동네에서 하루를 보내는 장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순간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다.
노콩은 노현지 작가의 활동명이다. 부산을 기반으로 약 10년째 작업을 이어오며 평범한 하루에 깃든 행복과 휴식을 이야기해 왔다. 주요 작업으로 제14회 부산평화영화제 공식 포스터와 부산광역시·올리브영 협업 기프트카드, ‘부산꾸’ 배경화면 등이 있다. 2026년에는 부산시 ‘NEXT10 청년 월드클래스’ 문화예술 분야 미술 부문에 최종 선정됐다.
작업실이 자리한 건물에는 검도장과 주짓수 학원이 있다. 오후가 되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기합 소리가 건물 안에 퍼지고, 1층에는 킥보드와 자전거가 세워진다. 창밖으로는 친근한 동네 풍경이 이어진다. 생활의 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겹치는 공간은 노콩의 그림에 등장하는 평안한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모두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는 그림
노콩이 꾸준히 다루는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잠’이다. 작가는 자신이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누구나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자신의 잠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부산에서 살아가는 만큼 지역의 일상도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거창한 사건보다 사람들이 날마다 마주하는 평범한 장면을 포착하고, 그 안에 놓인 휴식과 행복을 따뜻하게 표현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바닷가를 걷고, 모래사장에서 놀고, 자전거를 타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특별해 보이지 않던 하루가 그림 안에서는 오래 간직할 만한 기억으로 바뀐다.
2026 NEXT10 청년 월드클래스 선정
노콩은 2026년 부산시 ‘NEXT10 청년 월드클래스’ 문화예술 분야 미술 부문에 선정됐다. NEXT10 청년 월드클래스는 부산시가 재능과 성장 가능성을 지닌 청년을 발굴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 육성사업이다.
사업은 혁신리더, 문화예술, 미래신산업 분야의 청년을 선발하고, 3년 동안 1인당 최대 1억 원의 맞춤형 역량개발비를 지원한다. 교육과 해외 연수, 국제 교류 등 선정자의 성장 계획에 맞춘 활동도 뒷받침한다.
노콩은 전년도에도 지원했지만 1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다시 도전한 2026년에는 마지막 단계인 공개 발표까지 올랐다. 발표 준비와 연습, 무대 리허설을 거쳤으며 시민들이 현장에서 버튼으로 투표해 선정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최종 결과가 결정됐다. 대학 졸업 이후 오랜만에 선 공개 발표여서 긴장도 컸지만, 재도전 끝에 미술 부문 최종 선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작업실 한쪽에는 선정의 기억을 보여주는 트로피도 놓여 있다.
부산 기프트카드에 담긴 추억
부산을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노콩이 특히 기억하는 작업은 부산시와 올리브영이 협업한 부산 기프트카드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를 ‘추억’으로 정했고, 추억의 색을 보랏빛과 분홍빛으로 표현했다.
그림에는 부산을 여행하러 온 사람과 부산에서 살아가는 사람, 과거 부산을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겼다. 가운데 등장하는 두 인물은 부산에 사는 지인의 가족을 바탕으로 그렸다. 자전거를 타는 인물에는 부산에서 살다가 떠난 외국인 친구의 모습이 반영됐으며, 모래사장에서 노는 장면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 오빠와 광안리와 해운대에서 놀았던 기억이 녹아 있다.
노콩은 작품을 보는 사람이 그림 속 어느 장면을 가리키며 자신과 닮았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특정 인물의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누구나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여러 장면을 한 화면에 배치한 것이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작가의 만족도도 높아 지인들에게 선물로 여러 차례 건넸다.
가까운 사람을 작품 속에 숨기다
지인과 가족은 노콩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작가는 가까운 사람의 특징과 모습을 그림 속에 반영한 뒤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지인들은 자신이 작품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깊은 감동을 보이곤 했다.
가족도 때때로 작품 속에 숨어 있지만 반응은 지인들과 조금 달랐다. 가족들은 그림 속 인물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차이 역시 가까운 사람과 일상을 관찰해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소소한 장면이다.
작가가 실제 인물을 작품에 담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을 낯설게 바라보기보다 자신 또는 주변 사람과 닮았다고 느끼며 반가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작품 속 사람들은 특정한 누군가이면서 동시에 부산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여러 시민을 상징한다.
사진과 스케치로 모으는 장면
노콩은 스케치를 많이 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직접 촬영해 둔 사진을 먼저 스케치하고, 본 작업에 들어갈 때 장면과 표현을 더욱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일상에서 발견한 풍경을 바로 완성작으로 옮기기보다 기록하고 저장한 뒤 필요한 때 다시 꺼내 활용한다.
친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사진 가운데 작품으로 발전시킬 만한 장면이 있으면 사용해도 되는지 먼저 허락을 구한다. 작가가 모든 순간을 직접 촬영할 수 없는 만큼 주변 사람들이 기록한 장면도 동의를 얻어 수집한다. 이렇게 쌓인 사진과 스케치는 부산의 다양한 표정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리는 자료가 된다.
완성된 작품은 우연히 나온 장면처럼 자연스럽지만, 그 바탕에는 생활 속 풍경을 꾸준히 살피고 기록한 시간이 놓여 있다. 골목과 바다, 가족과 친구, 여행객과 시민의 모습이 차곡차곡 모여 하나의 부산 풍경으로 완성된다.
부산을 다시 발견한 계기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노콩이 고향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계기에는 브라질 교환학생 경험이 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브라질로 떠나 반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보낸 뒤 부산으로 돌아오자, 익숙했던 고향이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당시 주변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취업을 위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난 상태였다. 가까운 사람들이 부산을 떠난 데 대한 아쉬움과 외국 생활 뒤 다시 바라본 고향의 매력이 겹치면서 부산에 대한 애틋함이 커졌다.
한곳에서 계속 살다 보면 그 지역을 평범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곳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노콩은 부산에 재미있고 특별한 장소가 많다고 봤고,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산을 꾸준히 그려 왔다. 익숙함 때문에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장면을 작품으로 다시 보여주는 작업이 약 10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송도와 원도심을 잇는 부산 풍경
노콩이 부산 방문객에게 추천하는 곳은 송도다. 부산의 여러 바다 가운데 비교적 한적한 느낌이 있고,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활기가 있어 여유롭게 바다를 즐기기 좋다는 설명이다.
송도에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바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광복동과도 가까워 송도의 해안 풍경과 부산 원도심의 모습을 한 흐름으로 둘러보기 좋다. 바다와 오래된 도심이 가까운 거리에 이어지는 동선은 부산의 다양한 표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코스다.
송도의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출발해 광복동의 원도심으로 이동하면 부산의 해안과 도심 풍경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노콩이 작품에서 다루는 부산 역시 유명 관광지 하나에 머물지 않고 바다와 골목, 사람들의 생활이 이어지는 도시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작업실을 채우는 음악
노콩은 작업할 때 음악을 자주 듣는다. 마음에 드는 한 곡을 발견하면 100번 또는 2시간 동안 반복해 들을 만큼 같은 곡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다. 평소 성격이 밝은 편이어서 작업 중에는 분위기를 차분하게 눌러주는 음악을 주로 선택한다.
최근 반복해 듣는 곡은 최유리의 ‘생각을 멈추다 보면’이다. 원곡뿐 아니라 최유리와 진영이 함께 부른 라이브 영상도 즐겨 듣는다. 한 곡을 오래 반복하는 감상 습관은 그림에 집중하는 작업 시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노콩이 고른 부산의 배경음악
노콩이 자신의 기억과 부산의 장소를 연결해 고른 음악은 모두 다섯 곡이다. 각각의 노래에는 서면, 사직구장, 광안리, 해운대, 달맞이길 등 부산의 장소와 그곳에서 쌓인 추억이 담겨 있다.
| 곡 | 연결된 장소와 기억 |
|---|---|
| 제이레빗 ‘Happy Things’ | 밝은 목소리와 신나는 피아노 연주가 서면에 놀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놀러 가는 길에 즐겨 찾았던 곡이다. |
| 문성재 ‘부산갈매기’ | 사직구장에서 옆자리 관중이 가사를 알려주던 장면과 연결된다. 가사를 모두 외우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의 분위기를 즐겼던 기억이 남아 있다. |
| 악뮤 ‘오랜 날 오랜 밤’ | 추억이 많은 광안리와 이어지는 곡이다. 화려하고 북적이는 광안리 밤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때 즐거웠던 기억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떠오른다. |
| 앤 마리 ‘2002’ | 학창 시절 학교에서 일찍 나와 지하철을 타고 광안리로 향했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으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던 장면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
| 도경수 ‘팝콘’ | 친구와 해운대역에 내려 빵집에 들러 슈크림빵을 산 뒤 택시로 달맞이고개 위쪽까지 이동했던 코스를 떠올리게 한다. 길을 내려오며 갤러리 전시를 보고 해운대 바닷가로 향했다. 봄철 달맞이길에 만개한 벚꽃은 팝콘을 연상시킨다. |
이 선곡은 음악 자체의 분위기뿐 아니라 부산 곳곳에서 보낸 시간과 연결돼 있다. 노래를 들으면 장소가 떠오르고, 장소를 찾으면 당시 들었던 음악과 사람들이 다시 생각나는 방식이다. 부산의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과 음악으로 추억을 되짚는 감상은 서로 닮아 있다.
시민과 여행객의 사연을 그림으로
노콩은 앞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부산을 넘어 여러 사람의 부산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길 계획이다. 이 구상은 ‘NEXT10 청년 월드클래스’ 지원서에도 담겼다.
대상은 부산에서 살아가는 시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부산을 여행한 사람과 한국인, 외국인까지 각자가 부산에서 겪은 일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모은 사연을 작품으로 제작한 뒤 전시하는 것이 계획의 핵심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작가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을 바탕으로 부산의 일상을 그려 왔다면, 향후 작업은 더 다양한 사람의 경험으로 범위를 넓히게 된다. 부산이라는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시민과 여행객이 간직한 기억은 서로 다르다. 노콩은 그 각각의 사연을 그림으로 옮겨 전시할 예정이다.
익숙한 도시를 여행하듯 바라보기
노콩은 부산 시민에게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한 번쯤 관광지처럼 경험해 보길 권했다. 지루하거나 힘든 하루와 일주일을 보낸 뒤 부산에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며 도시를 둘러보는 방식이다.
부산을 새롭게 바라보는 여유는 지역을 찾은 여행객을 환영하는 마음과도 이어진다. 매일 지나던 바다와 거리, 익숙한 동네를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면 평범했던 장면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노콩의 작품은 부산의 거대한 변화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온한 하루에 주목한다. 바다를 걷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음악을 들으며 추억을 쌓는 순간이 그림의 중심이다. 시민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부산시 청년 육성사업에 선정된 노콩은 앞으로 더 다양한 부산의 사연을 작품과 전시로 이어갈 계획이다.
익숙한 부산을 다시 바라보고 평범한 하루의 여유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노콩의 그림이 전하는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