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에 되살아난 안용복

독도의 날을 맞아 부산 수영사적공원에서 독도 수호에 앞장선 안용복의 삶과 활동을 조명하는 야외 마당극이 펼쳐졌다. 수영사적공원 10월 상설공연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주민에게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노니는 유’ 사업의 하나로 기획됐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친근한 언어와 전통놀이, 관객 참여 요소로 풀어내면서 안용복의 행적과 독도 수호의 의미를 세대가 함께 되새기는 자리로 꾸며졌다.
안용복의 역사가 남은 공연 장소
공연이 열린 수영사적공원은 안용복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장소다. 공원에는 안용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수강사를 비롯해 그의 기개를 표현한 동상과 충혼탑이 조성돼 있다. 안용복을 주인공으로 삼은 공연이 그의 발자취가 남은 공간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무대와 장소가 하나의 역사적 맥락을 이뤘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 현재의 수영구에 있었던 경상좌수영에서 전선의 노를 젓는 하급 수군인 능로군으로 복무했다. 수군 생활을 하며 기른 강인한 체력과 바닷길에 대한 경험은 훗날 그가 작은 목선을 타고 울릉도와 독도로 향하는 바탕이 됐다. 그가 수군으로 활동했던 터전에서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은 극의 내용뿐 아니라 공원이 품은 역사적 의미까지 함께 접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원 안 야외공연장은 안용복의 삶을 다룬 마당극의 배경이 됐다. 무대 주변에 자리한 사당과 동상, 충혼탑은 공연에서 다룬 이야기를 공원의 실제 유적과 이어 주었다. 일상 속 문화 향유를 통해 지역의 전통성을 공유하고 계승하려는 ‘노니는 유’ 사업의 취지도 이러한 장소성과 맞물렸다.
수군 경험과 일본 도해의 토대
공연은 안용복이 살아간 시대적 배경과 수군 복무 과정부터 차근차근 짚었다. 17세기 후반 수군 체제가 개편되면서 해안가에 살던 천민과 사노비도 수군에 편성될 수 있었다. 양반가의 외거노비 신분이었던 안용복도 경상좌수영 능로군으로 차출돼 바다를 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부산 좌천동 일대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안용복은 초량 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어 실력과 일본 내부 사정에 관한 이해를 갖추게 됐다. 경상좌수영에서 익힌 항해술과 왜관 출입을 통해 쌓은 외교적 감각은 이후 두 차례 일본 도해에 나설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으로 제시됐다.
수군 복무를 통해 익힌 바다의 경험과 왜관에서 쌓은 소통 능력은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작용했다. 마당극은 그의 행동을 한순간의 결단으로만 그리지 않고, 경상좌수영에서의 복무와 어업 활동, 왜관 출입 경험이 이어진 결과로 보여줬다.
1693년 첫 번째 도해
극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1693년 발생한 제1차 도해 사건에서 시작됐다. 안용복은 일본 어민과 충돌한 뒤 납치됐지만, 피랍된 상황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를 상대로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공연은 안용복이 불리한 처지에서도 자신의 뜻을 당당히 전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낯선 땅으로 끌려간 상황에서도 영토에 관한 주장을 이어가 확약을 받아낸 과정은 마당극의 중요한 장면으로 다뤄졌다. 관객은 변사의 설명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사건의 흐름을 순서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1696년 두 번째 도해
1696년 제2차 도해에서 안용복은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는 조선 관리의 신분을 자처하고 자발적으로 바다를 건넜다. 그는 독도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일본 어선을 추격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일본 당국으로부터 다시는 조선의 바다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조와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첫 번째 도해가 납치된 상황에서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한 사건이었다면, 두 번째 도해는 안용복이 직접 바다를 건너 행동에 나선 과정으로 그려졌다. 공연은 두 사건의 차이를 구분하면서도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려 했던 그의 일관된 태도를 중심에 놓았다.
두 차례 도해는 안용복이 민간인의 신분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조선의 입장을 일본 측에 밝힌 과정이었다. 마당극은 항해와 대치, 주장과 약조로 이어지는 사건을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장면으로 구성했다.
귀국 뒤 시련과 재평가
안용복은 귀국한 뒤 국경을 무단으로 넘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사형 위기에까지 처했으나 최종적으로 유배를 가는 시련을 겪었다. 영토 수호를 위해 나섰던 행동과 당시 국법의 충돌은 그의 삶에서 또 하나의 굴곡으로 표현됐다.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이르러 안용복은 국가의 경계를 확립한 인물로 재평가됐다. 현대에도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지켜낸 민간 외교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공연은 두 차례 도해의 성과만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귀국 이후 겪은 위기와 뒤이은 평가까지 다루며 그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변사가 이끈 열린 마당극
공연은 유쾌한 변사의 등장으로 막을 올렸다. 변사는 안용복의 업적과 역사적 행적을 차례로 설명하고,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었다. 역사적 배경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사건의 순서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더했다.
주말을 맞아 공원을 찾은 가족 나들이객과 산책 중 공연을 접한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야외 무대를 둘러쌌다. 변사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면서도 안용복의 삶과 독도 수호 과정을 빠뜨리지 않고 전달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변사의 해설이 어우러지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영토 문제는 친근한 마당극의 언어로 펼쳐졌다.
야외공연장에서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깝게 형성됐다. 변사의 질문과 재치 있는 진행에 관객이 반응했고, 역사적 장면이 이어질 때는 무대로 시선이 모였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연에 합류하면서 개방된 야외 마당극의 특징도 드러났다.
전통놀이로 풀어낸 영토 분쟁
두 차례 도해 과정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영토 분쟁 장면은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전통놀이 대결 방식으로 구성됐다. 관객들은 양측을 대표해 놀이에 참여했고, 공연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승부 형식의 전통놀이로 풀어냈다. 설명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에 참여 요소가 더해지면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현장에는 외국인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도 자리했다. 안용복의 후손도 직접 참여해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무대 위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 호흡하면서 안용복의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공연 장면으로 이어졌다.
관객 참여 장면은 웃음과 호응을 끌어냈고, 변사는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역사적 상황을 놓치지 않도록 설명을 이어갔다. 흥겨운 마당극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공연의 중심 주제인 독도 수호와 해양주권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도록 구성됐다.
문화로 이어진 독도 수호 정신
수영사적공원 10월 상설공연은 안용복의 생애와 독도 수호 활동을 마당극으로 재구성했다. 경상좌수영 능로군으로 바다를 누빈 경험, 일본어와 일본 사정에 관한 이해, 두 차례 도해, 귀국 후의 시련과 후대의 재평가가 한 무대 안에서 순차적으로 펼쳐졌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수강사와 안용복 동상, 충혼탑이 자리한 공원의 역사적 풍경은 이야기의 여운을 이어갔다. 관객들은 공연에서 접한 인물과 사건을 실제 장소의 흔적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었다. 지역의 역사 자원을 공연으로 되살린 이번 무대는 문화 향유와 역사 계승을 함께 보여준 자리였다.
수영사적공원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다. 이번 공연은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렸으며 관람료는 무료였다.
공연 정보
| 공연명 | 독도 지킴이 안용복 |
|---|---|
| 공연일 |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부터 10월 11일 일요일까지 |
| 공연 시각 | 오후 4시 |
| 공연 장소 | 수영사적공원 야외공연장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
| 관람료 | 무료 |
| 관련 사업 | 노니는 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