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낙동강 유통과 상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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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낙동강 유통과 상업의 역사

부산 낙동강, 유통과 상업의 중심지

부산의 젖줄인 낙동강은 오랜 세월 동안 지역 경제와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 지방의 물산과 세곡 운송로로 활용되었으며, 근현대에 들어서는 낙동강 수운과 경부선 철도가 함께 발전하면서 유통과 상업이 크게 번성했습니다.

구포왜성, 전략적 요충지의 흔적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구포왜성은 부산 북구 구포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성은 일본식 성곽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최대 10m 높이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구포왜성은 낙동강 하류의 교통과 수로를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는 북이희망교라는 구름다리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구포은행, 민족자본의 시작

1909년 구포 지역 유지들과 상인들이 설립한 구포저축주식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계 지방금융기관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구포은행으로 전환되면서 부산 지역으로 영업 범위를 확대했으나, 1915년 경남은행으로 명칭을 바꾸고 본점을 부산 초량으로 이전하면서 민족자본의 기반이 일본 자본에 넘어가는 아쉬운 역사를 남겼습니다. 현재 구포은행 자리에는 우리은행 구포지점이 영업 중입니다.

구포역과 구포만세 테마거리

1905년 개통된 구포역은 경부선의 중요한 역으로, 부산 서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구포역 인근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 탈선 사고는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아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구포만세 테마거리는 3·1운동 당시 구포장터에서 벌어진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관련 조형물과 벽화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구포다리, 낙동강을 잇는 교통의 다리

1933년 완공된 구포다리는 낙동강을 사이에 둔 구포와 대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육상 교통로였습니다. 다리 건설로 인해 구포는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다소 줄었지만, 산업 물자 수송로로서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지반 약화와 태풍 피해로 인해 다리는 노후화되었고,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일부 교각과 상판이 붕괴되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삼락재첩거리와 낙동강 재첩

부산의 향토 음식인 재첩은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오랜 기간 채취되어 왔습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영양가가 뛰어난 재첩은 삼락재첩거리에서 맛볼 수 있으며, 재첩국과 함께 제공되는 비빔밥과 고등어조림이 조화를 이룹니다. 사상생활 사박물관에서도 재첩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하단포구와 황포돛배의 역사

하단포구는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물류 중심지로, 조선 후기부터 영남 내륙의 세곡과 물자가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 서울로 운반되기 전 기착지 역할을 했습니다. 개항 이후에는 정미업과 쌀 도·소매업, 객주업이 발달하며 상업항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단포구는 낙동강을 건너는 주민들의 교통수단인 황포돛배의 종착지였으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도선으로 대체되었고, 낙동강하굿둑 건설로 인해 원래 위치는 매립되어 현재는 어린이놀이터인 햇님공원으로 변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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