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산과 두모포왜관의 역사 산책

수정산과 두모포왜관의 역사 산책
부산 동구 수정동 일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과거 두모포왜관이 위치했던 곳으로, 왜관을 관장하던 ‘수정(水亭)’에서 유래한 지명인 수정동과 수정산이 있습니다. 두모포왜관은 70년간 일본과 조선 간의 교류와 갈등의 중심지였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지역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두모포왜관과 고관공원 터
두모포왜관비는 임진왜란 영웅 윤흥신 장군상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단순한 대리석 비석에 두모포왜관의 역사를 간략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면서도 교린 정책의 일환으로 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교역을 이어갔습니다. 두모포왜관은 이러한 교류의 상징이자 관리의 중심지였습니다.
수정산 능선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부산을 대표하는 3대 공원 중 하나였던 고관공원 터에 이릅니다. 이 일대는 두모포왜관 터로도 불리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입니다.
두모진해관비와 조일 갈등
1673년 초량왜관으로의 이전 결정 이후에도 두모포왜관 지역은 조일 간 갈등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일본의 무관세 수출입과 조선 내 이권 침탈로 인해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두모진해관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산진 매축과 도시 발전
부산진 매축은 부산의 근대 도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닷가를 메워 도시를 확장하는 매축 작업은 1913년과 1926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1939년 매축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 지역의 매축지비는 매축 공사의 개요를 담고 있으며, 부산진매축주식회사가 주도한 사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식 가옥과 문화공감 수정
수정동에는 1943년에 건립된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습니다. 해방 후 민간에 불하되어 일부 개량되었으나,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복원되었습니다. 현재는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되며, 일제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산복도로와 수정배수지
수정동 산복도로는 부산의 독특한 주거 형태를 상징합니다. 경사면에 형성된 판자촌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어 해방 후 피란민과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수정배수지는 1931년에 완공된 상수도 배수지로, 당시 급증한 인구에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을 담당했습니다.
경부철도 용지 표지석과 수정동 목장성
수정산 인근에서는 1898년부터 1901년 사이 경부선 철도 예정지로 설치된 표지석이 발견되어 부산근현대역사관에 보관 중입니다. 또한, 수정동 목장성은 조선시대 오해야항 목장의 외성으로, 현재 부산동여자중학교 뒤편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정산 정상과 누나의 길
수정산 정상에서는 백양산과 낙동강, 김해평야, 황령산, 장산 등 부산의 주요 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인근 안창마을은 1978년 이주 이후 무허가 주택 문제를 해결하며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 ‘누나의 길’은 과거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희망을 상징하는 장소로, 부산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수정산과 그 일대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 근대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두모포왜관의 역사적 의미부터 매축 사업, 일제시대 건축물, 그리고 산복도로의 삶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부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